펄어비스는 게임을 만든다. 그것도 남의 엔진이나 남의 세계관을 빌려오지 않고, 게임을 돌리는 기술 뼈대인 자체 엔진부터 스스로 만들어 그 위에 '검은사막'과 '붉은사막'이라는 자기 세계를 짓는 회사다. 매출의 뿌리는 단순하다. 검은사막을 중심으로 한 몇 개의 IP를 세계 곳곳에서 서비스하며 이용자가 결제한 돈을 받는다. 회사의 방향은 창업자 김대일이 쥐고 있다. 그는 지분 36.66%, 특별관계자를 합치면 38.05%를 들고 있어, 이 회사가 무엇을 만들지·번 돈을 어디에 쓸지의 결정 축에 그가 서 있다.
게임사의 살림에는 남다른 리듬이 있다. 한두 개의 히트작이 몇 년씩 회사를 먹여 살리고, 그 흥행에는 반감기가 있어 시간이 갈수록 매출이 서서히 식는다. 그러니 지금 장부에 찍힌 매출은 '오늘의 실력'이라기보다 '몇 년 전 터뜨린 흥행이 지금까지 흘려보내는 잔열'에 가깝다. 검은사막은 그 잔열을 10년 넘게 끌어온 IP다.
FY2025의 펄어비스는 그 잔열 위에 서 있으면서, 동시에 다음 불씨를 준비하는 대기 국면에 있었다. 매출 3656억, 자본 7991억, 현금 1339억, 은 약 44%. 무거운 빚 없이 히트로 쌓아둔 자산 위에 앉아 있는 회사다. 이 발판을 먼저 세워둬야, 뒤에 나올 '적자'라는 단어가 무엇을 뜻하고 무엇을 뜻하지 않는지가 제대로 보인다.
2026년 2월 12일, 회사가 아직 감사를 마치지 않은 상태로 먼저 내놓은 잠정 실적을 보면 손익계산서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며 한 번 꺾인다. 맨 위 매출은 3656억으로 전기 3424억보다 6.8% 늘었다. 그런데 게임을 만들어 파는 본업에서 남긴 이익, 즉 영업손익은 -148억. 전기 -123억보다 적자가 오히려 깊어졌다. 그리고 맨 아래 은 전기 +603억에서 당기 -84억으로 부호까지 뒤집혔다.
회사가 실적을 알리며 직접 적은 사유는 이랬다. '전기 중 발생한 외환관련 이익 및 금융자산 평가이익 제거로 차이 발생.' 부호가 뒤집힌 진짜 동인이 게임이 아니라 게임 바깥에 있다는 뜻이다. 한 달 뒤인 3월 19일 정식 사업보고서가 나오면서는 더 이상한 장면이 겹쳤다. 자회사를 합친 연결 장부에서 순손실은 -84억인데, 펄어비스 홀로의 장부(별도)로 펴면 같은 해 순손실이 -611억까지 커진다. 하나의 회사, 하나의 해인데 적자의 크기가 7배 넘게 갈린다.
세전 단계로 역산해 보면 뒤집힘의 정체가 드러난다. 전기엔 세전이익이 777억인데 그중 본업 영업은 -123억이었으니, 게임 바깥에서 약 900억이 순익을 밀어올렸다. 당기엔 세전이 -90억, 영업이 -148억이니 게임 바깥 몫은 58억으로 쪼그라들었다. 전기의 흑자 603억은 검은사막이 벌어준 게 아니라 환율과 금융자산 평가가 그려준 그림이었고, 그 그림이 벗겨지자 두 해 내리 적자였던 본업의 맨얼굴이 순익에도 드러난 것이다. 이건 회사가 '택한' 결과가 아니라 환율이 흔들고 지나간 자리, 재량 밖에서 벌어진 일이다. 별도 장부의 -611억도 마찬가지다. 자회사에 투자한 주식의 회수가치가 낮아졌다고 본 손상이 얹힌 것이고, 감사인 삼정회계법인도 '종속기업투자주식의 사용가치 추정'을 감사에서 특히 눈여겨본 항목으로 올렸다. 손상의 크기 자체는 회사가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 적자 국면 위에서, 회사가 스스로 손을 댄 결정 하나가 정반대 방향으로 걷는다. 2026년 6월 9일, 펄어비스는 1000억 규모의 취득 을 새로 걸었다. 자사주를 산다는 건 회사가 시장에서 자기 주식을 사들여 들고 있겠다는 것이고, 여기서는 한국투자증권에 맡겨 12월 9일까지 전일 종가 38,500원 기준 약 2,597,402주를 사들이기로 했다. 계약을 걸기 전 회사는 이미 자기 주식 4.4%(2,803,945주)를 들고 있었고, 목적은 '주주 가치 제고'라 적혔다. 그 몇 달 전 3월엔 2023년 6월에 부여했던 스톡옵션이 처음 행사되면서 자사주 32만주를 주당 48,700원, 약 156억어치를 임직원 이동원 외 21명에게 넘겼다.
순손실을 낸 해였다. 그런데 현금은 1339억이 남아 있었고 부채는 가벼웠다. 회사는 그 남은 현금을 빚을 줄이거나 곳간에 묶어두는 대신 주주에게 돌려주는 쪽으로 걸었다. 번 돈이 아니라 쌓아둔 돈으로 하는 환원이다. 왜 하필 지금, 왜 1000억인지 — 그 속내를 이 자료만으로는 가를 수 없다. 다만 '두 해 연속 본업 적자'와 '1000억 자사주'라는 두 사실이 같은 해에 나란히 놓여 있다는 것, 그 병치까지가 이 장부가 말해주는 전부다.
게임 동종들을 나란히 세워 보면, 이 업종에선 과 순이익이 따로 노는 게 오히려 흔한 일이라는 게 보인다. FY2025에 엔씨소프트는 영업이익이 161억으로 전년 영업손실(-1,092억)에서 겨우 흑자로 돌아섰는데, 순이익은 그 20배가 넘는 3,474억이었다 — 늙어가는 리니지 본업이 아니라 두툼한 곳간에서 나온 금융·투자 이익이 순익을 밀어올린 것이다. 위메이드는 반대 방향이었다. 영업이익은 107억으로 소폭 늘었는데 순이익은 -270억 적자로 돌아섰다. 자체 발행 코인 위믹스의 평가손실 같은 영업 밖 손실이 게임에서 번 얼마 안 되는 이익을 덮어버린 탓이다. 크래프톤조차 영업이익은 -10.8% 줄었는데 순이익은 -43.7%로 더 크게 빠졌다.
펄어비스의 뒤집힘도 이 지형 안에 있다. 전기 흑자 603억이 환율·평가가 만든 그림이었고 그게 벗겨지자 순익이 -84억이 됐다는 이야기는, NC나 위메이드가 겪은 '순익이 게임 실력과 따로 움직이는' 바로 그 현상의 펄어비스 버전이다. 다만 딛고 선 발판이 저마다 다르다. 크래프톤은 배틀그라운드 하나로 쌓은 이익잉여금 5조6,375억의 무차입 현금방석 위에서 다음 한 방을 사냥하고, 넷마블은 스핀엑스 같은 스튜디오를 M&A로 사와 IP를 빌린 대가로 부채비율 47%와 영업권을 안았다. 시프트업은 니케·스텔라 블레이드라는 자체 IP로 60%대·부채비율 18%의 가벼운 신흥으로 올라섰다.
펄어비스가 선 자리는 이 사이 어딘가다. 검은사막이라는 오래 벌어준 프랜차이즈를 깔고 앉았다는 점에선 NC와 닮았지만, NC의 리니지가 늙어가는 자리라면 펄어비스는 붉은사막이라는 다음 IP를 아직 재무제표 밖에서 굽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부채비율 약 44%에 현금 1339억이라 크래프톤 같은 압도적 현금방석은 아니지만 위메이드처럼 무겁지도 않다. 게임사의 진짜 미래는 손익계산서에 없고 아직 안 나온 신작에 있다는 이 업종의 규칙 위에서, 펄어비스는 매출의 26.4%인 719억을 연구개발로 태우며 다음 게임을 '비용'의 형태로만 장부에 올려두고 있다.
그래서 FY2025의 펄어비스는 두 개의 열린 갈래 위에 놓여 있다. 하나는 검은사막이 10년 넘게 대온 매출의 잔열이 어디까지 버텨줄지, 다른 하나는 아직 재무제표 밖에 있는 붉은사막이 719억이라는 개발비를 언젠가 매출로 되갚을지다. 붉은사막은 글로벌 유통사와 퍼블리싱 계약을 체결했지만, 그 매출은 아직 재무제표 밖에 있고 실린다 해도 다음 장부의 일이며 흥행이 숫자로 확정된 것도 아니다. 두 해 연속 본업 적자, 환율이 좌우한 순익, 별도와 연결로 7배 넘게 갈리는 적자의 크기, 그 위에 얹힌 1000억 자사주 — 이 숫자들은 이 회사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말할 뿐, 다음 게임이 어떻게 될지는 이 장부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다.
FY2025 게임사 여섯 곳의 손익계산서 맨 윗줄, 그러니까 게임을 팔아 들어온 매출의 증감을 나란히 세워보면 화살표가 하나로 모이지 않는다. 크래프톤은 3조3,266억으로 22.8% 늘었고 시프트업은 2,945억으로 31.4%, 넷마블은 2조8,351억으로 6.4%, 펄어비스는 3,656억으로 6.8% 올라갔다. 반대로 엔씨소프트(NC)는 1조5,069억으로 4.5% 줄었고 위메이드는 6,140억으로 13.7% 빠졌다. 같은 산업, 같은 해인데 누구는 몸집이 커졌고 누구는 쪼그라들었다. '게임 업황이 좋았다' 혹은 '나빴다' 한마디로는 이 갈림이 안 잡힌다.
왜 방향부터 제각각인지 알려면 게임 회사의 매출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부터 봐야 한다. 게임은 한두 개의 대박 게임이 회사를 몇 년씩 먹여 살리는 산업이다. 한 번 크게 터진 게임은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매출이 식는데, 그 식어가는 곡선이 지금 장부의 숫자를 만든다. 그러니까 오늘의 매출은 오늘 만든 게 아니라, 몇 년 전 터뜨린 게임이 아직 다 식지 않고 내는 열이다. 시프트업의 '니케'와 '스텔라 블레이드'는 아직 뜨겁게 갓 나온 열이고, 크래프톤의 '배틀그라운드'는 PC·콘솔·모바일에 이어 인도 전용판(BGMI)까지 나온 세계적 히트작이다. 반면 NC의 리니지, 펄어비스의 검은사막은 나온 지 오래된 게임들이라 그 열이 식어가는 국면에 있다. 위메이드의 미르 역시 오래된 IP 계열이지만, 그 열이 지금 어느 지점까지 식었는지는 이 자료만으로 단정하기 어렵다.
즉 여섯 곳은 같은 해를 지났지만 각자 자기 대표작의 '식어가는 정도'가 다른 지점에 서 있었다. 매출이 오른 곳과 내린 곳의 차이는 하나의 공통 충격이 갈라놓은 게 아니라, 저마다 딛고 선 히트의 나이가 갈라놓은 것이다. 그리고 이 첫 번째 갈림은, 맨 윗줄 아래로 내려가면 훨씬 더 극단으로 벌어진다.
매출만 보면 여섯 곳은 그저 성장과 정체로 나뉜다. 그런데 그 아래, 실제로 남긴 이익과 맨 밑의 순이익까지 내려가면 숫자들이 서로 다른 세계에 사는 것처럼 갈라진다. NC는 게임을 만들어 판 본업에서 남긴 영업이익이 161억에 그쳤는데 — 이건 전년의 영업손실 1,092억에서 겨우 흑자로 돌아선 것이다 — 맨 밑의 순이익은 3,474억, 영업이익의 20배가 넘었다. 크래프톤은 정반대다. 영업이익은 1조544억으로 10.8% 줄었을 뿐인데 순이익은 7,337억으로 43.7%나 빠졌다. 위메이드는 또 다르다. 본업에서는 107억 흑자를 냈는데 맨 밑은 270억 적자로 뒤집혔다.
펄어비스도 이 뒤집힘의 한복판에 있다. 본업의 이익인 영업손익은 -148억으로 전기 -123억보다 적자가 더 깊어졌는데, 정작 사람들을 놀라게 한 건 맨 밑이다. 순이익이 전기 603억 흑자에서 당기 84억 적자로 부호까지 뒤집혔다. 매출은 6.8% 늘었는데 맨 밑은 흑자에서 적자로 넘어갔다.
같은 국면을 지나는데, 어떤 곳은 본업이 죽어가는 와중에 순익이 폭발하고, 어떤 곳은 본업은 멀쩡한데 순익이 무너진다. 매출로는 안 보이던 균열이 이 대목에서 활짝 벌어진다. 이 극과 극의 결과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을 만드는 건 회사마다 다르게 굳어 있는 두 개의 구조다 — 하나는 '게임 실력과 장부 숫자가 얼마나 어긋나 있는가', 다른 하나는 '다음 대박을 무엇을 딛고 준비하는가'다. 이 둘을 차례로 펴보면 왜 저마다 다른 결과인지가 드러난다.
게임사의 손익계산서는 맨 위 매출과 맨 아래 순이익 사이 어딘가에서 이야기가 한 번 꺾인다. 그 꺾임을 만드는 게 이 산업 특유의 두 회계 장치다. 첫째, 신작을 만드는 데 쓴 개발비를 '나중에 벌어줄 자산'으로 장부에 얹어두느냐(자산화), 아니면 쓴 그 해에 곧바로 비용으로 태워버리느냐다. 자산으로 얹어두면 지금 영업이익이 커 보이지만, 그 게임이 흥행에 실패하면 얹어둔 자산을 한꺼번에 손실로 털어내야 한다. 둘째, 게임 안에서 유저가 결제한 현금을 그 아이템을 쓸 것으로 추정되는 기간에 걸쳐 나눠서 매출로 인식하는 방식이라, '유저가 실제로 낸 돈'과 '장부에 찍힌 매출'이 어긋난다. 게다가 대박으로 현금을 잔뜩 쌓은 게임사는 그 현금이 만드는 금융·투자 손익, 지분 가치 변동이 본업과 따로 순이익을 흔든다.
그래서 영업이익을 '지금 게임 실력'으로 읽으면 반드시 틀린다. NC가 그 극단이다. 게임으로 남긴 건 161억뿐인데 순익이 3,474억까지 부푼 건, 늙어가는 리니지가 벌어준 게 아니라 오래 쌓아둔 자산에서 나온 금융·투자 이익이 밀어올린 것이다. 이 20배의 괴리 자체가 'NC는 지금 게임으로 버는 게 아니라 과거에 쌓아둔 것으로 버틴다'는 신호다. 위메이드는 반대 방향의 어긋남이다. 본업 107억 흑자를 자체 발행한 코인 '위믹스'의 평가손·손상·이자 같은 영업 밖 손실이 덮어버려 순익이 270억 적자로 내려앉았다. '위메이드의 순익은 게임이 아니라 코인이 쓴다'는 구조가 그대로 드러난다.
펄어비스의 뒤집힘도 같은 축 위에 있다. 회사가 실적을 알리며 직접 적은 사유는 '전기 중 발생한 외환관련 이익 및 금융자산 평가이익 제거'다. 세전이익으로 되짚으면 선명해진다. 전기엔 영업이 -123억인데도 영업 밖에서 약 900억이 순익을 밀어올려 흑자 603억을 만들었고, 당기엔 그 영업 밖 몫이 58억으로 쪼그라들었다. 전기의 흑자는 검은사막이 벌어준 게 아니라 환율과 평가가 그려준 그림이었고, 그림이 벗겨지자 두 해 내리 적자였던 본업의 맨얼굴이 순익에까지 올라온 것이다.
여기서 놓치면 안 될 건, 이 어긋남의 크기가 저마다 '고른 자리'라는 점이다. 위메이드는 코인이라는 새 판돈에 회사를 실었다 — 그래서 상방도 하방도 코인이 쓴다. 그 반대편에 시프트업이 있다. 남의 IP를 빌리지 않고 소수의 자체 IP만 직접 굴려, 매출의 60% 넘게 이익으로 남기는 고마진 구조다. 이런 곳은 본업 이익과 순익이 크게 어긋날 여지 자체가 적다. 화려한 영업 밖 이익도 없지만, 순익을 통째로 뒤집는 평가손실의 위험도 안 지는 자리를 고른 셈이다. 같은 산업에서 누구는 어긋남을 키우는 쪽을, 누구는 어긋남을 줄이는 쪽을 골랐다.
히트에는 반감기가 있고, 다음 대박이 언제 어디서 터질지는 아무도 못 맞힌다. 그래서 결과를 더 크게 가르는 건 '지금 뭘로 버는가'가 아니라 '다음 한 방을 무엇을 딛고 준비하나'다. 같은 흥행 사이클을 만나도, 발밑에 뭘 깔고 서 있느냐가 번 돈을 어디에 쓸 수 있는지를 정한다.
크래프톤은 발판이 가장 두껍다. 부채비율 31%에 빚이 없고, 그동안 쌓은 이익잉여금이 5조6,375억이다. 이 현금 위에 서 있으니 번 돈을 방어가 아니라 신작 베팅·스튜디오 인수·주주환원에 쓸 재량이 여섯 곳 중 가장 넓다. 다만 그 넓은 재량의 반대편엔 배틀그라운드 하나에 매출이 쏠린 위험이 있다 — 다음 한 방을 스스로 못 만들면 그 두꺼운 현금이 성장 정체를 가리는 방석이 된다. 넷마블은 다른 길을 택했다. 잃어버린 시간을 자체 히트로 건너는 대신 소셜카지노 스핀엑스 같은 해외 스튜디오를 사와 IP와 매출을 사들였다. 그 대가로 부채비율은 47%로 높아졌고, 남의 IP에서 나가는 로열티와 인수로 생긴 영업권·빚을 안았다. 번 돈의 상당 부분이 사들인 몸집을 유지하고 빚을 갚는 데 묶여, 크래프톤과는 재량의 폭이 다르다.
위메이드는 아예 코인이라는 새 판에 회사를 실어, 부채비율 115%로 여섯 곳 중 유일하게 100%를 넘겼다. 시프트업은 정반대로 부채비율 18%로 가장 가볍지만, 그 가벼움이 몇 개 안 되는 자체 히트에 그대로 얹혀 있어 다음 한 방을 다시 만들어낼 수 있느냐가 숙제다. 펄어비스는 또 다른 자리다. 부채비율 44%에 현금 1,339억을 들고, 크래프톤처럼 두꺼운 현금 위에 앉아 사냥하는 것도 아니고 넷마블처럼 사와서 건너는 것도 아니다. 검은사막이 아직 돈을 벌어주는 와중에, 그 벌이로는 다 못 대는 개발비를 쌓아둔 자본을 헐어 메우며 다음을 직접 만든다. 벌면서 동시에 헐어 쓰는 자리다.
이 발판들은 회사가 그냥 물려받은 날씨가 아니다. 하나같이 과거에 고른 선택이고, 지금 그 대가와 함께 서 있다. 크래프톤은 단일 IP에 집중해 초대박을 얻은 대신 그 하나에 매인 자리를 골랐고, 넷마블은 자체 히트를 기다리는 대신 사오는 길을 골라 빚을 안았고, 위메이드는 게임 밖 판돈에 회사를 실어 변동성을 골랐다. 펄어비스가 벌면서 헐어 쓰는 자리에 선 것도, 검은사막 하나로 10년 가까이 버티는 동안 다음을 자체 개발로만 채우겠다고 정한 선택의 결과다.
두 개의 축을 펄어비스에 겹치면, 이 회사는 두 축이 정면으로 부딪히는 지점에 서 있다. 첫 축에서 보면, 검은사막이라는 10년 가까이 버텨온 대표작의 열이 식어가는 중이고, 그 열이 만든 매출 위에 환율과 평가가 얹혀 순익을 흔들었다. 둘째 축에서 보면, 그 벌이만으로는 다 못 대는 다음 게임의 개발비를 쌓아둔 자본을 헐어 메우고 있다. 그러니까 펄어비스는 게임 산업 공통의 국면만 지나는 게 아니라, 그 위에 '단일 IP로 버티며 차기 대작 하나에 회사를 거는' 자기만의 사정이 한 겹 더 얹혀 있다. 검은사막이 벌어주는 돈과 붉은사막에 태우는 개발비가 같은 손익계산서 위에서 맞부딪히는 국면이다.
여기서 무엇이 회사가 어쩔 수 없이 몰린 일이고 무엇이 스스로 택한 일인지를 갈라야 한다. 두 해 연속 본업 적자가 났다는 사실, 전기 흑자가 환율·평가를 걷어내자 사라졌다는 사실, 검은사막의 열이 식어간다는 사실 — 이건 크기 자체를 회사가 마음대로 줄일 수 없는, 대체로 몰린 자리다. 반면 재량이 닿는 곳도 분명하다. 붉은사막에 들어가는 돈을 어떻게 회계에 담느냐가 그 하나다. FY2025 매출의 26.4%인 719억이 연구개발로 나갔고, 붉은사막은 그 비용으로만 존재할 뿐 매출에는 한 줄도 오르지 못했다. 이 개발비를 '나중에 벌어줄 자산'으로 얼마나 얹어두느냐에 따라 지금 손실의 폭이 달라지고, 신작이 기대에 못 미치면 그 자산은 상각·손상으로 되돌아온다.
장부를 어느 창으로 펴느냐에 따라 적자의 크기마저 달라진다는 점도 이 회사를 특히 잘 드러낸다. 자회사를 합친 연결 장부에서 순손실은 84억, 주당 137원이다. 그런데 펄어비스 홀로의 장부로 가면 순손실이 611억, 주당 994원까지 커진다. 차이의 정체는 자회사에 투자한 주식의 회수가치가 낮아졌다고 본 손상이고, 감사인 삼정회계법인도 '종속기업투자주식의 사용가치 추정'을 특히 눈여겨본 항목으로 올렸다. 같은 회사 같은 해인데 별도로 보면 611억, 연결로 보면 84억 적자 — 어느 쪽도 거짓이 아니고 보는 창이 다를 뿐이다.
그리고 이 모든 적자 국면 위에서 회사가 한 선택은 반대 방향으로 걷는다. 2026년 6월 9일, 펄어비스는 1,000억 규모로 자기 주식을 사들이는 신탁계약을 새로 걸었다. 이미 4.4%(2,803,945주)를 들고 있는 위에서다. 그 몇 달 전 3월엔 2023년에 부여한 스톡옵션의 첫 행사에 맞춰 자사주 32만 주를 임직원에게 넘겼다. 벌지 못한 해였지만 현금은 1,339억이 남아 있었고 빚은 무겁지 않았다 — 번 것이 아니라 쌓아둔 것으로 주주에게 돌려주는 결정이다. 왜 하필 지금 이 규모인지, 그 속내를 이 자료만으로는 가를 수 없다. 다만 두 해 연속 적자와 1,000억 자사주라는 두 사실이 같은 해에 나란히 놓여 있다는 것까지만 이 장부는 말해준다.
정작 이 회사의 무게가 실린 곳은 손익계산서 어디에도 아직 없다. 붉은사막은 글로벌 유통사와 퍼블리싱 계약을 체결했지만, 그 매출은 아직 재무제표 밖에 있고 실린다 해도 다음 장부의 일이다 — 흥행이 숫자로 확정된 게 아니다. 그래서 FY2025의 펄어비스는 두 개의 열린 갈래 위에 서 있다. 검은사막이 대온 매출의 열이 어디까지 버텨줄지가 하나고, 아직 재무제표 밖에 있는 신작이 그동안 태운 비용을 매출로 되갚아 줄지가 다른 하나다. 두 해 연속 본업 적자와, 환율이 좌우한 순익과, 창으로 갈리는 적자의 크기와, 그 위에 얹힌 1,000억 자사주 — 이 숫자들은 지금의 상태를 말할 뿐, 다음 게임이 어떻게 될지는 이 장부에 적혀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