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는 완성되기 전에 수도 없이 검사를 받는다. 칩이 제대로 동작하는지 찔러보는 바늘이 프로브핀이고, 칩을 잠깐 끼워 신호를 주고받게 하는 받침이 테스트 소켓이다. 리노공업은 이 두 가지를 만든다. 바늘 브랜드 이름은 리노핀. 부산에 자리 잡은 이 회사가 파는 건 장비가 아니라 검사 과정에서 계속 닳아 다시 사야 하는 물건이라는 게 핵심이다. 면도기를 한 번 사면 면도날은 계속 갈아 끼워야 하는 것과 같은 구조라, 칩을 많이 검사할수록 리노가 파는 소모품도 그만큼 빨리 소진된다.
이 성격이 리노의 실적을 특정한 리듬에 묶어 놓는다. 반도체 라인을 새로 깔 때 발주가 몰렸다 끊기는 장비와 달리, 소모품은 세상에 도는 칩 물량 자체에 붙어 오르내린다. 그래서 리노의 매출은 반도체 물량 사이클을 거의 그대로 탄다. 회사의 평소 모습은 몇 가지 숫자로 요약된다 — 이채윤 회장이 34.66%를 쥔 오너 회사, 빚이 사실상 없는 무차입, 그리고 이 40%대 후반에 이르는 초고마진. 화려한 확장 대신, 닳는 물건을 높은 마진으로 꾸준히 파는 자리에 서 있는 회사다.
2026년 2월 10일, 리노공업이 내놓은 지난 한 해 성적표는 모든 항목이 사상 최대였다. 매출 3,725억원으로 전년보다 33.9% 늘었고, 은 1,770억원으로 42.5% 늘었다. 회사가 밝힌 이유는 딱 한 줄, '거래처 수주 확대 및 공정개선에 따른 수익성 증가'다. AI 붐으로 칩 물량이 폭발하자, 그 칩을 검사하며 닳는 소모품 수요도 함께 부풀어 오른 결과다.
여기서 눈에 밟히는 건 증가율의 어긋남이다. 매출은 34% 늘었는데 영업이익은 42% 늘었다. 파는 양이 늘어난 것보다 남기는 몫이 더 크게 불었다는 뜻이고, 그만큼 만드는 과정을 다듬고 잘 남는 제품 쪽으로 무게가 실렸다는 얘기다. 그 결과 영업이익률은 47.5%. 100원을 팔면 47원 넘게 남긴다는 이 숫자가, 리노가 서 있는 자리를 한 장면으로 보여준다.
사상 최대 실적은 갑자기 찾아온 행운처럼 보이지만, 그 뒤에는 이 회사가 몇 년 전에 내린 선택이 놓여 있다. 반도체 물량이 줄며 매출이 2022년 3,224억에서 2023년 2,556억으로 21% 빠졌던 그 하강 국면에, 리노는 부산에코델타시티 산업33블록에 대형 신공장을 짓기로 했다. 2024년 11월 8일 건축·설비에 971.8억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고, 앞서 그 땅을 분양받으며 낸 대금까지 합치면 1,700억대 규모다. 전방 수요가 빠지던 시기에 오히려 생산 능력을 미리 키운 이 결정은, 빚이 없었기에 가능했다. 빚에 쫓기는 회사라면 매출이 줄 때 몸을 웅크리지만, 무차입인 리노는 저점에서도 삽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미리 키운 생산 능력이 AI 붐이 온 2025년 사상 최대 매출로 돌아왔다. 사이클의 바닥에 심어 정점에 거둔 셈이다. 이건 물량이 줄어서 어쩔 수 없이 몰린 결정이 아니라, 남는 현금을 어디에 쓸지 스스로 고른 결정이다. 그리고 리노는 벌어들인 현금을 딱 두 곳으로만 흘려보냈다. 하나는 방금 본 본업 증설, 다른 하나는 주주 이다. 같은 날 결정한 지난해 배당은 총 607억원, 한 주에 800원. 벌어들인 1,520억원의 약 40%를 주주에게 돌려준 셈이고, 이건 매년 이어 온 기조다.
한 가지 더 짚어둘 게 있다. 리노의 순이익 1,520억원은 전년보다 34.1% 늘어, 영업이익 증가율과 나란히 움직였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반도체 업계에서 이 나란함은 드물다. 어떤 회사는 본업이 폭발한 해에 순이익이 오히려 줄고, 본업이 잠잠한 해에 지분을 팔아 순이익이 뛴다 — 보유한 금융자산이 순이익의 방향을 갈라놓기 때문이다. 리노는 그런 흔들림 없이, 본업이 만든 이익이 그대로 순이익으로 이어진다. 벌어들인 것도 본업이고, 그 돈을 쓴 곳도 본업과 주주뿐이다.
AI와 메모리가 이끄는 이번 상승 국면은 반도체 회사들을 한 줄에 세우지 않는다. 밸류체인의 어느 층에 서 있느냐에 따라 붐이 닿는 세기가 제각각이다. 칩을 직접 만드는 SK하이닉스는 AI용 고대역폭 메모리(HBM)가 터지며 지난해 영업이익 47조2,063억원(+101.2%)을 냈고, 이 숫자는 삼성전자 전체 영업이익 43조6,011억원을 앞질렀다. 메모리 한 우물이 이번 사이클의 한복판에 놓였던 자리다. 삼성전자도 감산으로 바닥을 친 뒤 영업이익 43조6,011억원(+33.2%)으로 회복했지만, 세트와 파운드리라는 다른 사업을 함께 짊어진 만큼 결이 다르다.
붐의 세기가 밸류체인 위치로 갈린다는 건, 재무가 튼튼하지 않아도 진원에 가까우면 이익이 폭발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AI 서버용 고다층 기판을 만드는 이수페타시스는 빚을 지고 증설을 대며(순차입 약 822억) 지난해 매출 1조880억(+30%)·영업이익 2,047억(+100.9%)을 냈다. 반대로 감광액·슬러리 같은 소재를 만드는 동진쎄미켐은 진원에서 멀어, 본업 매출은 7.3% 느는 데 그쳤다. 순이익이 34.4% 줄었지만 이는 중국 법인 정리와 해외 자산 손상 같은 정리비용 탓이지 본업이 역행한 건 아니다.
이 지형에서 리노공업의 자리는 조용하지만 또렷하다. 재무 축이 가장 닮은 건 같은 무차입 우량인 한미반도체다. 한미는 HBM용 열압착 장비를 만드는 후공정 장비 대장으로, 지난해 매출 5,767억(+3.2%)·영업이익 2,514억(-1.6%)에 순이익은 40.2% 늘었다 — 순이익의 방향을 HPSP 지분 처분 같은 보유 자산이 갈랐다. 리노는 재무 체력은 닮았어도 사업의 결이 다르다. 장비는 발주가 몰렸다 끊기지만, 리노의 소모품은 칩 물량에 붙어 초고마진으로 자란다. 그리고 결정적 대조가 하나 더 있다 — 한미가 무차입으로 쌓은 현금을 SpaceX 지분 같은 본업 밖 자산에 넣은 반면, 리노는 그 현금을 본업 증설과 배당 밖으로 한 번도 내보내지 않았다. 같은 무차입이라도 현금이 향한 방향이 다르다.
리노공업의 지난해는 명료하다. 저점에 미리 심은 공장이 정점에 매출로 돌아왔고, 벌어들인 현금은 본업과 주주 두 곳으로만 흘렀고, 순이익은 본업과 어긋나지 않았다. 다만 리노를 사상 최대로 밀어 올린 그 성질 — 칩 물량에 붙어 도는 소모품이라는 성질 — 은 양쪽으로 작동한다. 2023년 물량이 빠졌을 때 매출이 21% 줄었던 것처럼, AI 붐이 식어 칩 물량이 줄면 리노의 매출도 함께 줄 수 있다. 지금은 물량이 부풀어 오른 국면에 서 있고, 그 다음 사이클이 어디로 갈지는 이 실적표 안에서 갈리지 않는다.
FY2025 반도체 회사들의 성적표를 나란히 놓으면 한 방향의 힘이 먼저 보인다. SK하이닉스는 영업이익 47조2,063억으로 1년 만에 두 배(+101.2%)가 됐고, 삼성전자는 43조6,011억(+33.2%), AI 서버용 기판을 만드는 이수페타시스는 영업이익이 2,047억으로 역시 두 배(+100.9%), 리노공업은 1,770억(+42.5%)을 냈다. 매출은 하나같이 늘었다. 이 방을 관통한 바람의 이름은 분명하다 — AI·메모리 슈퍼사이클. HBM 같은 AI 서버용 메모리 수요가 칩의 값과 물량을 동시에 밀어올린 상승 국면이다.
그런데 같은 방에 있으면서 두 회사는 반대로 걸었다. 한미반도체는 영업이익이 2,514억으로 1.6% 줄었고, 동진쎄미켐도 1,724억으로 1.7% 뒷걸음쳤다. 같은 공기를 마셨는데 결이 다르다. 한미는 HBM 장비 대장으로 이미 높은 자리에서 출발한 회사라 한 해 더 오르기가 버거웠고, 동진은 칩을 만드는 소재를 대는 회사라 이 사이클의 열기가 닿는 층 자체가 다르다. 국면은 하나였지만, 그 하나가 여섯 회사에 똑같은 세기로 닿지는 않았다.
매출이라는 겉면을 한 겹 벗기고 이익과 순익까지 내려가면 격차는 더 벌어진다. SK하이닉스는 순이익 42조9,479억(+116.9%)을 내며, 영업이익 47조2,063억으로 삼성전자 전체 영업이익(43조6,011억)마저 넘어섰다. 메모리 한 우물을 판 회사가 종합 반도체 1위의 영업이익을 앞지른 해다. 같은 해 이수페타시스의 순익은 1,605억으로 두 배 넘게(+116.8%) 불었는데, 동진쎄미켐의 순익은 941억으로 3분의 1이 깎였다(-34.4%). 순익이 두 배가 된 회사와 3분의 1이 사라진 회사가 한 방에 있다.
같은 상승 국면을 지나면서 결과가 이렇게 극과 극으로 갈리는 이유는 실적표 바깥이 아니라 회사의 짜임새 안에 있다. 그 짜임새는 크게 두 갈래로 풀린다 — 하나는 반도체가 만들어지는 긴 사슬에서 이 회사가 어느 칸에 발을 디뎠나, 다른 하나는 그 회사가 손에 쥔 순익을 무엇이 만들어냈나다.
첫째 갈래는 사슬 위의 자리다. AI 붐의 열은 D램과 HBM을 실제로 찍어내는 제조 공정에서 가장 뜨겁게 오른다. SK하이닉스는 D램·낸드만 만드는 회사로 엔비디아향 HBM 공급의 선두에 서서 그 열을 가장 가까이서 받았고 — 영업이익이 한 해에 두 배가 됐다. 한 칸 떨어진 이수페타시스는 AI 서버에 들어가는 여러 층을 겹친 기판을 대며 매출 1조880억으로 처음 1조를 넘겼다. 리노공업은 칩을 다 만든 뒤 검사할 때 쓰는 소모품을 대는 자리라 매출 +33.9%로 붙어 올랐다. 열원에서 멀어질수록 온도는 낮아진다. 칩의 원재료인 소재를 대는 동진쎄미켐의 본업(계속영업 기준)은 매출 +7.3%, 영업이익 -1.7%로, 같은 붐 속에서도 데워지는 폭이 가장 작았다.
이 자리는 그냥 주어진 게 아니라 오래전에 고른 것이고, 고른 데에는 양면의 값이 붙는다. 열원에 가까운 자리는 이번처럼 붐이 오면 이익이 크게 튀지만, 방향이 반대로 꺾이면 그만큼 깊이 파인다. 리노공업만 해도 사이클이 식었던 2023년엔 매출이 3,224억에서 2,556억으로 21% 빠졌고, SK하이닉스는 그해 감산으로 바닥을 찍고서야 여기까지 올라왔다. 반대로 소재 자리를 지킨 동진은 이번 상방이 작은 대신 사이클의 진폭 자체가 얕다. 지금 크게 오른 자리는 한때 깊이 파일 각오를 함께 산 자리이고, 덜 오른 자리는 덜 파이는 안정을 함께 고른 자리다.
둘째 갈래는 손에 쥔 순익을 무엇이 밀어올렸나다. 한미반도체와 리노공업은 재무의 생김새가 놀랄 만큼 닮았다. 한미는 18%에 2,762억으로 사실상 빚이 없고, 리노는 부채비율 8%에 순현금 852억으로 역시 무차입이다. 그런데 순익이 만들어지는 방식이 다르다. 한미는 HBM 장비가 폭발한 해에 오히려 순익이 눌렸고, 장비 발주가 잦아든 해에는 보유하던 다른 회사 지분(HPSP)을 팔아 순익이 40.2%(2,140억) 튀었다. 순익의 방향을 본업이 아니라 장부에 얹힌 금융자산이 갈랐다는 뜻이다. 리노는 영업이익이 42.5% 늘 때 순익도 34.1% 늘어, 둘이 한 몸처럼 움직였다.
동진쎄미켐의 -34.4%도 여기서 읽어야 어긋나지 않는다. 그 순익 급감은 본업이 뒷걸음쳐서가 아니라, 중국 법인 열 곳의 70%를 팔아치우고 스웨덴 자산에서 손상을 인식한 해외 정리 비용 때문이다. 본업 영업이익은 -1.7%로 거의 제자리였다. 결국 세 회사의 순익을 흔든 건 사슬 위 위치가 아니라, 무차입으로 모은 현금과 장부에 무엇을 얹어두었고 국경 밖에서 무슨 일을 벌였나였다. 이것도 회사가 골라 안은 것이다 — 한미는 지분 자산을, 동진은 해외 법인을 자기 몸에 붙였고, 리노는 순익을 흔들 일회성도 영업 바깥 변수도 없이 오직 본업만 얹어두었다.
두 갈래를 리노공업에 겹쳐보면 이 회사의 성격이 또렷해진다. 리노가 만드는 건 칩을 검사할 때 바늘처럼 칩을 찌르는 프로브핀과 테스트 소켓이다. 칩 하나를 검사할 때마다 핀 끝은 조금씩 닳고, 닳으면 새로 사야 한다. 라인을 깔 때 발주가 몰렸다 뚝 끊기는 장비와 달리, 이 소모품은 칩이 찍혀 나오는 물량에 붙어 계속 돈다. 그래서 리노의 실적은 반도체 물량 사이클을 거의 그대로 탄다 — 2022년 3,224억으로 정점을 찍고, 2023년 다운사이클에 2,556억으로 21% 빠졌다가, AI 붐이 온 2025년 3,725억(+33.9%)으로 사상 최대를 냈다. 영업이익률은 47.5%. 검사할 때마다 닳는 부품을 초고마진으로 파는 사업의 얼굴이다.
여기서 붐이 오고 가는 물량의 방향 자체는 리노가 정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건 전방의 칩 제조가 얼마를 찍느냐에 달렸다. 리노 손에 남은 재량은 빚 없이 모은 현금을 어디에 쓰느냐였고, 여기서 눈에 띄는 선택이 하나 있다. 매출이 빠지던 2023~2024년, 그러니까 물량이 줄어 남들이 몸을 사릴 저점에, 리노는 부산에코델타시티 산업33블록에 대형 신공장을 계속 지었다 — 건축·설비에 972억, 앞선 토지 분양대금 700억대까지 합치면 1,700억대다. 사이클이 얼어붙은 자리에 캐파를 미리 심어두고, 붐이 온 2025년 사상 최대 매출로 그걸 거둬들였다.
번 돈의 나머지는 주주로 갔다. FY2025 배당은 607억, 주당 800원으로 순익의 40%다. 확인되는 사실은 여기까지다 — 리노는 무차입으로 쌓은 현금을 본업 증설과 배당, 딱 두 곳으로만 흘려보냈다. 같은 무차입 우량인 한미가 그 현금 일부를 SpaceX 지분 같은 본업과 먼 자산에 넣은 것과는 갈래가 다르다. 다만 리노가 왜 그 두 곳만 골랐는지, 그 판단의 속을 가를 자료는 이 실적과 공시 안에 없다. 우리가 아는 건 무엇을 택했나까지다.
닫는 자리에 남는 건 이 회사가 서 있는 조건 그 자체다. 소모품이 물량에 붙어 돈다는 건, 붐이 식어 칩 물량이 줄면 리노의 매출도 함께 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2023년의 -21%가 그 증거로 이미 장부에 찍혀 있다. 그 다음 사이클이 언제 어느 쪽으로 꺾일지는 이 재료 안에서 갈리지 않는다. 갈리는 건, 그때 리노가 다시 어느 저점에 무엇을 심어둘 것인가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