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스공사를 읽으려면 순서를 하나 바꿔야 한다. 보통 회사는 '무엇을 얼마에 파느냐'로 시작하지만, 이 회사는 그 '얼마'를 자기가 못 정한다. 하는 일 자체는 단순하다 — 해외에서 LNG(액화천연가스)를 배로 실어와, 각 지역 도시가스회사와 발전소에 도매로 넘긴다. 우리 집 부엌 가스레인지에 불이 붙기 전, 그 가스가 거쳐가는 도매 길목에 이 회사가 서 있다. 그런데 그 도매요금은 회사가 아니라 정부가 정한다. LNG 수입값에 적정한 공급비용을 얹은 원가를 계산해, 정부가 '이만큼 받아라'고 요금을 승인하는 방식이다. 값을 시장이 아니라 규제자가 매기는 이 구조를 총괄원가주의라 부른다.
그래서 이 회사의 성적을 가르는 건 '얼마나 많이 팔았나'가 아니다. 판매량이 아니라, 오른 원가를 정부가 요금에 얼마나, 언제 반영해주느냐가 손익을 정한다. 지배구조도 이 성격을 그대로 비춘다 — 정부가 26.15%, 한국전력이 20.47%, 국민연금 등을 더해 특수관계인이 53.97%를 쥔, 정부가 지배하는 공기업이다. 화학이나 철강 회사가 시황을 타고 값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것과 달리, 이 회사는 요금은 정부가, 원가는 국제 LNG값이 정하는 두 힘 사이에 끼여 서 있다.
이 끼인 자리가 만든 가장 특이한 흔적이 하나 있다. 장부에 쌓인 약 14조원의 미수금이다. 정부가 물가를 이유로 일반 가정용(민수용) 요금을 원가보다 낮게 눌러둔 동안, 회사가 대신 떠안은 LNG 원가를 그냥 손실로 털지 않고 '나중에 요금으로 걷을 자산'으로 장부에 쌓아둔 것이다. 회계 용어로 정산자산. 이 14조가 뭘 뜻하는지가 이 회사 이야기의 심장인데, 그건 뒤에서 하나씩 펼치겠다.
2026년 2월 26일, 회사가 지난 한 해(FY2025) 성적을 내놓았다. 매출 35조7,273억원으로 전년보다 6.9% 줄었고, 은 2조1,012억원으로 30% 감소했다. 여기까지는 완만한 축소로 읽힌다. 그런데 맨 아래 에서 숫자가 갑자기 무너진다 — 1,323억원. 전년 1조1,490억원에서 88%가 사라졌다. 영업이익 2조1,012억원의 16분의 1도 안 되는 값이 최종 순이익으로 남았다.
눈여겨볼 건, 이 세 숫자가 같은 힘에 밀린 게 아니라는 점이다. 회사가 밝힌 원인이 각기 다르다. 매출이 준 건 '천연가스 판매단가 하락' 때문 — 국제 LNG값이 내리면 원가에 연동된 요금도 내려가 매출이 줄어든다. 영업이익이 준 건 '정산이익 감소' — 쌓인 미수금을 회수하며 잡던 이익이 줄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순이익만은 전혀 다른 데서 무너졌다. '유가 하락 등으로 인한 자산손상 증가'. 매출·영업이익이 규제요금과 LNG값의 자연스러운 오르내림이었다면, 순이익을 88% 깎아낸 건 그와 무관한 별개의 사건이었다.
순이익 1,323억원과 영업이익 2조1,012억원 사이에 벌어진 그 간극부터 열어보자. 그 정체는 자산손상이다. 이 회사는 국가 에너지 안보를 명분으로 과거 해외 자원개발에 나섰다 — 모잠비크, 예멘 같은 곳이다. 유가가 내리자 그 사업들의 장부가치가 실제 가치만큼 유지되지 못한다고 보고, 그 차이만큼 장부에서 깎아냈다. 요금을 억제당해 미수금을 쌓는 본업의 짐에, 과거의 해외투자가 손실로 돌아온 것이 겹친 해였다. 여기서 갈라볼 게 있다 — 손상의 '크기'는 유가라는 회사 밖의 힘이 정했지만, 애초에 그 해외 자원개발에 발을 들인 투자 결정만큼은 과거의 회사가 스스로 내린 선택이었다. 지금의 손상은 그 옛 선택이 돌아온 자리다.
더 중요한 건, 그렇게 남은 1,323억원 '흑자'조차 곧이곧대로 읽으면 안 된다는 점이다. 이건 총괄원가 회계가 만든 숫자다. 정부가 인정한 원가와 수익을 장부에 반영한 결과이지, 금고에 그만큼 현금이 들어왔다는 뜻이 아니다. 실제 현금은 약 14조원이 미수금으로 묶여 있다. 못 걷은 원가를 자산으로 쌓아둔 그 14조 말이다. 그 돈이 들어오기 전까지 회사는 어딘가에서 자금을 빌려 그 구멍을 메워야 하고, 그 대가로 한 해에 문 이자만 2조3,177억원이다. 은 397%. 장부의 흑자와 텅 빈 현금이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다.
여기서 이 회사의 재량이 어디까지 닿는지를 정확히 그어야 한다. 솔직히 재량이라 부를 것이 거의 없다. 요금은 정부가 정하고, 원가는 국제 LNG값이 정하고, 14조 미수금을 언제 걷을지도 정부의 요금 결정에 달려 있다 — 회사 스스로도 그 회수 시기가 '정부 승인 등에 따라 변동될 수 있다'고 적었다. 대부분의 국면에서 이 회사는 '택했다'기보다 '몰렸다'가 정확하다. 그래도 재량이 닿은 자리가 하나 도드라진다. 순이익이 88% 급감한 그 해에, 회사는 을 유지했다. 주당 1,154원, 총액 1,007억원 — 남은 순이익 1,323억원의 76%가량이다. 미수금 14조와 부채비율 397%를 안고서도 그렇게 했다. 다만 최대주주가 정부와 한국전력인 공기업의 배당이라, 이것이 순수한 자율적 결정인지 정부 주주의 요구인지는 이 자료만으로 가릴 수 없다. 배당을 유지했다는 사실과, 최대주주가 정부라는 사실 — 둘을 나란히 놓는 데서 멈춘다.
전기·가스·열 같은 필수 유틸리티는 모두 정부가 요금을 정한다. 그래서 이들의 성적을 가르는 공통 변수는 하나다 — 오른 원가를 정부가 요금에 얼마나, 언제 반영해주느냐. 이 '규제의 지체'를 FY2025에 회사마다 다른 방식으로 통과했다. 가장 극적인 건 한국전력이다. 한전은 이 지체를 미수금 같은 완충 장치 없이 손익으로 그대로 받는다. 연료값이 폭등한 2022~2023년엔 오른 원가를 요금에 못 넘겨 팔수록 손해인 역마진에 빠졌고, 2023년 영업손실이 -4조5,400억원까지 갔다. 그러다 요금이 오르고 연료비가 내린 2024~2025년엔 영업이익 13조4,906억원, 순이익 8조6,667억원으로 완전히 뒤집혔다. 규제요금의 적자와 흑자가 몇 년 사이에 통째로 갈아엎히는 스윙이다.
한국가스공사는 같은 지체를 정반대로 처리한다. 손익으로 받지 않고 미수금으로 미룬다. 억제된 요금 탓에 대신 떠안은 원가를 '나중에 걷을 자산'으로 장부에 쌓아, 이익은 흑자로 지키되 현금 약 14조원이 묶였다. 한전은 손익이 출렁이는 대신 현금 구멍은 미수금만큼 덜 파고, 가스공사는 흑자를 지키는 대신 현금이 묶여 이자를 문다 — 같은 규제 지체를 정반대 통장에 적은 셈이다. 한국지역난방공사는 또 다르다. 열과 전기 요금 연동이 비교적 매끄럽게 작동해, FY2025 영업이익 5,296억원으로 61.5% 개선되며 한전 같은 급반전도, 가스공사 같은 대규모 이연도 없이 완만히 회복했다. 다만 이 셋은 공통점이 있다 — 오른 원가를 요금으로 걷기 전까지 차입으로 메우느라 부채비율이 258~417%에 이르고, 그 이자가 이익을 갉는다.
이 짐에서 비껴 선 회사가 삼천리다. 이쪽은 공기업이 아니라 민간 도시가스 소매사다. 가스공사에서 도매로 받은 가스를 규제 소매요금으로 파는 구조라 마진이 안정적이고, FY2025 영업이익 1,596억원에 부채비율은 137%로 가볍다. 오른 원가를 차입으로 메우고 미수금으로 이연하는 도매 공기업의 무게를 애초에 지지 않는 자리다. 그러니 이 산업은 두 축으로 갈린다 — 규제 지체를 손익으로 받나 미수금으로 미루나, 그리고 그 갭을 공기업 차입으로 메우나 민간 소매 마진으로 비껴가나. 한국가스공사는 '미수금으로 미루고 차입으로 메우는' 쪽의 극단에 서 있다.
그래서 이 회사를 읽는 자리는 손익계산서의 흑자냐 적자냐가 아니다. 요금을 스스로 못 정하는 회사가, 정부가 억제한 요금의 못 걷은 원가를 약 14조원의 미수금으로 쌓아두고, 그 회수 시기를 다시 정부의 요금 결정에 맡긴 채, 그 사이의 자금 구멍을 한 해 2조3,177억원의 이자로 메우고 있는 — 그 구조를 보는 일이다. FY2025의 이익 1,323억원은 시장의 성적표가 아니라 규제가 만든 산물이고, 그 뒤에는 14조의 미수금과 397%의 부채가 서 있다. 언제 요금이 올라 그 미수금이 현금으로 돌아올지, 아니면 또 억제된 원가가 다시 쌓일지 — 그 열쇠를 쥔 건 회사가 아니라 정부다. 이 회사의 다음 장면은, 이 회사가 아닌 곳에서 쓰인다. 거기까지가 지금 이 회사가 서 있는 자리다.
FY2025는 이 산업에 공통으로 좋은 바람이 불던 해였다. 2022~2023년 세계를 흔든 연료값 폭등이 가라앉고, 그동안 억눌렸던 요금은 뒤늦게 올랐다. 전기·가스·열을 파는 회사에게 이보다 반가운 조합은 드물다. 사들이는 값은 내리고 받는 값은 올랐으니까. 실제로 한국전력공사는 팔수록 손해였던 처지를 완전히 뒤집어 영업이익 13조4,906억, 순이익 8조6,667억을 냈고, 한국지역난방공사는 영업이익이 5,296억으로 61.5% 뛰었으며, 도시가스를 소매로 파는 삼천리도 영업이익이 39.6% 늘어 1,596억을 기록했다. 같은 방향, 같은 개선이다.
그런데 이 방 한가운데 다른 표정을 짓는 회사가 하나 있다. 한국가스공사다. 남들이 다 웃는 해에 이 회사의 영업이익은 30% 줄어든 2조1,012억, 순이익은 전년 1조1,490억에서 1,323억으로 무려 88% 급감했다. 같은 산업, 같은 시기, 같은 바람인데 방향이 정반대다. 이 어긋남을 '가스공사가 못했다'로 정리하면 아무것도 못 본 거다. 이 산업에서 회사들이 파는 값은 시장이 아니라 정부가 정한다 — 원가에 적정 수익을 얹어 요금을 승인하는 총괄원가주의다. 그러니 손익을 가르는 건 연료값 자체도, 판매량도 아니다. 오른 원가를 정부가 요금에 얼마나, 그리고 언제 반영해주느냐 — 그 시차를 각자가 어떻게 처리하기로 골랐느냐다.
숫자를 한 겹 더 벗겨보면 대비가 더 날카로워진다. 한국전력은 2023년 매출총이익이 -1조4,800억까지 내려가 물건을 팔수록 손해를 보는 역마진에 빠졌고, 영업손실이 -4조5,400억에 이르렀다. 그러던 회사가 2년 만에 영업이익 13조 흑자로 돌아섰다. 적자에서 흑자로, 그것도 조 단위를 오가는 스윙이다. 반대로 한국가스공사는 이 두 해 내내 흑자를 놓친 적이 없다. FY2025에도 순이익 1,323억으로 흑자를 지켰다. 얼핏 보면 흔들리지 않은 쪽이 더 단단해 보인다.
그런데 이 '흑자'의 정체가 이상하다. 가스공사의 장부엔 이익이 찍혀 있는데, 금고엔 현금이 없다. 못 걷은 원가가 약 14조 원어치 '미수금'이라는 자산으로 쌓여 있고, 그 갭을 메우느라 한 해 이자로만 2조3,177억을 문다. 부채비율은 397%다. 흑자를 지킨 회사의 살림이 흑자로 뒤집힌 회사보다 반드시 편한 것도 아니다. 같은 규제요금 산업을 지나면서 한쪽은 손익이 롤러코스터를 타고, 다른 쪽은 손익은 평평한데 현금이 마르고 빚이 부푼다. 왜 이렇게 갈릴까. 답은 각 회사가 '규제의 시차'를 어디로 흘려보내기로 골랐는지, 그리고 그 시차를 무엇으로 버티기로 골랐는지 — 이 두 갈래에 있다.
첫 번째 갈래는 오른 원가와 억눌린 요금 사이의 틈을 '어디에 담느냐'다. 두 공기업이 정확히 반대편을 골랐다. 한국전력은 그 틈을 손익계산서로 바로 받는다. 요금에 못 넘긴 연료값은 그대로 손실이 되고, 요금이 오르면 그대로 이익이 된다. 그래서 -4.54조와 +13.49조 사이를 오가는 극적인 진폭이 생긴다. 반면 한국가스공사는 같은 틈을 손익이 아니라 자산으로 미룬다. 정부가 민수용 요금을 억제한 동안 대신 떠안은 LNG 원가를, '나중에 요금으로 걷을 자산'으로 장부에 얹어두는 것이다 — 원료비 연동제라는 규칙이 이걸 허락한다. 그 잔액이 약 14조, 당장 걷을 몫을 뺀 장기 미회수분만 11조7,500억이다.
이 선택은 공짜가 아니다. 미수금으로 미루는 쪽은 손익의 흔들림을 지워 흑자를 지키는 대신, 못 걷은 돈이 현금이 아니라 '언젠가 걷을 약속'으로 묶인다. 그 약속이 현금으로 돌아오는 시점은 회사가 아니라 정부의 요금 결정에 달렸다. 회사 스스로도 회수 시기는 정부 승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적었다. 감사인마저 이 미수금을 얼마로 잡느냐, 즉 정산손익을 제대로 쟀느냐를 그해 가장 중요한 감사 대상으로 꼽았을 만큼, 이 숫자 하나에 회사의 실체가 걸려 있다. 손익으로 바로 받은 한전은 최악의 해에 팔수록 손해라는 밑바닥을 직접 겪었지만, 요금이 오르자 그 손실을 곧바로 이익으로 회수했다. 미수금으로 미룬 가스공사는 밑바닥의 적자를 장부에서 피했지만, 그 대가로 14조를 현금 아닌 자산의 형태로 붙들고 있다. 어느 쪽이 낫다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가지 않은 길'이다.
두 번째 갈래는 그 틈을 메우는 동안 '무엇으로 버티느냐'다. 오른 원가를 요금으로 걷기 전까지, 그 사이의 돈은 어디선가 나와야 한다. 정부가 지배하는 세 공기업은 모두 그걸 차입으로 메운다. 그래서 한국전력 417%, 한국가스공사 397%, 한국지역난방공사 258%로 부채비율이 하나같이 높다. 특히 한전의 부채 205조6,000억은 역마진 시기의 손실을 빚으로 버텨낸 흔적이고, 가스공사의 금융원가 2조3,177억은 14조 미수금을 차입으로 메우는 이자값이다. 규제요금 공기업이라는 자리는 국가 인프라를 책임지는 대신, 요금을 못 걷는 동안의 자금 부담을 빚으로 떠안는 자리인 것이다.
같은 규제 소매요금을 파는데도 이 짐을 지지 않는 회사가 있다. 삼천리다. 이 회사는 한국가스공사에서 도매로 받은 가스를 규제된 소매요금으로 되판다. 도매 공기업이 국제 LNG값의 출렁임과 정부의 요금 억제를 온몸으로 받는 자리라면, 삼천리는 그 위층에서 받아 파는 안정적인 마진의 자리다. 오른 원가를 대신 떠안아 미수금으로 쌓을 일도, 그 갭을 빚으로 메울 일도 없다. 그 결과가 부채비율 137% — 공기업 셋(258~417%)보다 훨씬 가볍다. 같은 '규제요금'이라는 방에 있어도, 밸류체인의 어느 층에 서기로 골랐느냐가 짊어질 짐의 무게를 완전히 갈라놓는다. 민간 소매의 가벼움은, 도매 공기업이 지는 국가적 부담을 애초에 떠맡지 않기로 한 자리의 다른 이름이다.
앞의 두 갈래를 한국가스공사에 겹치면 자리가 또렷해진다. 이 회사는 규제의 시차를 미수금으로 미루기로 고른 쪽이자, 그 갭을 공기업 차입으로 메우는 쪽이다. 두 축에서 모두 '흔들림을 지우고 짐을 떠안는' 편에 서 있다. 그래서 FY2025의 순이익 1,323억이라는 흑자는 시장이 매긴 성적표가 아니다. 정부가 인정한 원가와 수익을 총괄원가 회계로 옮겨 적은 숫자일 뿐, 금고에 그만큼 현금이 쌓였다는 뜻이 아니다. 실제 현금 약 14조는 미수금으로 묶여 있고, 그 위에 부채비율 397%와 이자 2조3,177억이 서 있다. 장부의 흑자와 텅 빈 금고가 따로 걷는 회사다.
게다가 이 해엔 본업의 짐 위에 한 겹이 더 얹혔다. 영업이익 2조1,012억이 순이익 1,323억으로, 그 16분의 1로 쪼그라든 간극이다. 회사는 그 정체를 유가 하락에 따른 자산손상이라고 밝혔다. 과거 에너지 안보를 명분으로 모잠비크·예멘 등에 벌여둔 해외 자원개발의 장부가치를, 유가가 내리자 깎아낸 것이다. 요금을 억제당해 미수금을 쌓는 본업의 부담에, 과거의 해외투자가 손상으로 돌아온 부담이 나란히 겹친 해였다. 이 두 겹 가운데 앞의 것은 산업 공통의 구조지만, 뒤의 것은 이 회사가 예전에 스스로 나선 투자의 뒤늦은 청구서라는 점에서 결이 다르다.
그렇다면 이번 국면에서 이 회사에 '재량'이 있던 자리는 어디였을까. 솔직히 거의 없다. 도매요금은 정부가 정하고, 원가는 국제 LNG값이 정하고, 14조 미수금을 언제 현금으로 걷을지도 정부의 요금 결정에 달렸다. 대부분의 국면에서 이 회사는 무언가를 '택했다'기보다 '몰렸다'가 정확하다 — 남은 선택지가 이토록 적다는 사실 자체가 이 회사가 선 자리를 말해준다. 그나마 재량의 손이 닿은 걸 꼽자면, 순이익이 88% 급감한 해에도 배당 1,007억, 주당 1,154원을 그대로 유지한 결정 정도다. 장부에서 확인되는 사실은 여기까지다. 다만 이 배당이 회사의 자율적 판단인지, 최대주주인 정부(26.15%)와 한국전력(20.47%)이라는 정부 주주의 요구인지 — 그 동기는 이 자료만으로 가려지지 않는다. 무엇을 했는지는 보이지만, 왜 했는지는 이 공시에 담겨 있지 않다. 언제 요금이 올라 14조가 현금으로 돌아올지, 억제된 원가가 다시 쌓일지도 회사가 아니라 정부가 정한다. 파는 값도, 걷는 시점도 제 손에 없는 회사의 이야기는, 그 결정권을 쥔 손이 다음에 무엇을 정하느냐에서 다시 이어진다.